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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김진희 작가 초대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날아오르다’

작성 : 치과 병원소식 담당 / 2021-11-01 14:40 (수정일: 2021-11-01 14:42)


신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처음 만든 꽃, 바로 코스모스(cosmos)다. 만들고 나니까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신은 주물럭주물럭 시험을 해보다가 마지막으로 국화꽃을 만들어냈다는, 믿거나말거나 서양귀신 신화다.
 
코스모스는 꽃이기 이전에 ‘우주’라는 뜻을 지닌 단어다. 우주가 마치 악기들의 화음과 선율의 조화로 보였다며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붙였다는 데 참 경이롭다. 화장품(cosmetic)의 어원도 코스모스에서 시작한다. 화장은 코스모스 즉 우주의 명령을 받아 조화롭고 질서있는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아름다운 것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는 중요한 의식행위라는 얘기다. 가냘픈 코스모스가 이런 거대한 의미의 화장이고, 우주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동서고금의 역사를 일별해보면, 여인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가치는 없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일러 권력으로 말하는 이유다. 피타고라스의 놀라운 비약이든 남성 본위의 편식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든, 아름다움을 위한 화장이라는 개념은 여성의 세월 속에 스며든 지 오래다.
 
화면 속 여인은 오늘도 화장을 한다. 단순히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옳다. 그 화장은, 들에 나서기 전 무명끈으로 허리를 질끈 동여매는 촌아낙의 결기와도 같다. 여인의 얼굴을 창백하다. 섬세하고 치밀하며 음영이 풍부한 뉘앙스를 지운 탓에, 서릿발 같은 찬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가는 윤곽으로 처리한 어깨선, 삼단처럼 말끔하게 빗어넘긴 머릿결, 초점을 잃은 듯 몽환적 분위기가 드러나는 시선에서는 예의 관능이나 에로티시즘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강인함이 드러난다. 거울 앞에 앉은 여인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사는가...(작가 노트)라는 물음을 끝없이 자신에게 던진다. 실존적 자아를 좇은 오디세이아다. 여기에서 작가는 슬그머니 여인의 의식에 편승한다.
 

화장을 마친 여인은 이제 본격적으로 현실세계에 뛰어들 태세다. 다양한 오브제는 여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신한다. 화려한 하이힐은 남성의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부정이며, 새와 나비는 자유의지의 발현을 상징한다. 그러면서 족두리와 비녀를 통해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발아시키며 양육하는 전통의 존재가치(작가 노트)’를 확인하고자 한다.
 
한국화에서 여백은 작가만의 주관적인 사유적 공간으로 통한다. 전통 한국화들이 이 여백을 빌려 잔잔한 음악과 고요한 정조나 작가의 내면세계를 암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련의 화면에서는 강렬한 채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혼돈(chaos)과 그 혼돈에서 탄생한 질서(cosmos)를 강렬한 채색에 담아 여인의 창조적 영점을 부각시킨다.
어쨌든 작가는 한국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성긴 모시천의 질감과 오일의 결합도 한국화의 새로운 해석과 변용을 통해 차별화된 한국의 정신을 말하자는 의도다.
 
오브제의 선택에 있어서도, 작가는 편식을 과감히 거부하고 있다. 성긴 모시천의 질감과 오일의 결합은 그런 변주고 시도다. 이를 통해 묵은 비늘같은 자신의 오래된 관성을 눈에서 떼내려 한다. 한국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은밀한 소통을 시도하려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전시에 앞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날아오르다’를 주제를 부친다. 밀란 쿤데라의 동명소설을 차용한 듯하다. 소설은 인생이란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 딱 한번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래서 뭐가 좋고 나쁜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소설의 골자다.
 
현실보다 더 예측 불가능한 것이 있을까.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질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거대한 체계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다. 여인은 아니, 작가는 다시 거울 앞에 앉는다.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만을 생각하며 거친 항해를 했듯이, 자신만의 뜨거움을 찾아 예측 불가능한 현실에 뛰어들기 위해 또 화장을 한다

작가노트 -

작품을 제작할 때 나의 관심은 개인과 우주 사이의 관계이다. ‘존재하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내가 여성으로써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개별자로서의 나는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가?’하는 실존적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여 동양의 고대 철학인 음양론에 귀결된다.
예로부터 여성은 음에 해당하며 생명의 근원인 대지 혹은 물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물은 반드시 낮은 곳을 향해 온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발아시키며 양육하는 존재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여성은 생명을 낳아 기르는 숙명을 갖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날아오르다‘ 연작에서 드러나는 여인상은 창백하면서도 가냘픈 몸매를 지니나, 태아를 담고 있는 볼록한 배, 바람에 흩날리는 한복의 실루엣과 소녀에서 여인으로의 재탄생을 알리는 결혼식에서 볼 수 있는 족두리와 비녀, 한껏 치장한 여인은 새로운 도약을 상징하며, 자아를 관조하며 사색에 잠긴 듯한 치켜 올려진 눈매, 간결하면서도 단아하게 마무리 된 선을 사용함으로써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한국여인의 우아한 자태를 담고 있다.
흩날리듯 하늘로 치솟은 머리카락은 마치 여인의 자궁과도 같아 피고 지는 꽃의 순환성과 놀라운 생명력을 표현하면서도 여성들의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비행하는 새와 나비, 유영하는 물고기는 남성성을 상징하고 이는 남성과 여성의 합일을 통해 음과 양의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계로 관객을 유도함과 동시에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선 자유와 평화를 노래한다.
화려한 색채는 관객의 즉각적 유도를 끌어냄과 동시에 환상적이면서도 몽환적 세계 혹은 소녀에서 여인으로의 탈바꿈에 대한 환호와 축복을 이끌기 위함이다.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날아오르다‘ 연작은 모시라는 전통 천에 오일을 사용하여 한국화의 경계를 넘어선 한국적, 서양적 재료와 기법을 동시에 구사함으로써 하나의 고립된 장르를 넘어 새로운 지평, 보편성과 특수성을 담아내기 위한 변화와 모색을 지향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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